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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을 선택한 김훈과 안중근 의사를 우러러보다

하늘아래태양 2023. 1. 2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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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설 연휴를 맞아 세 번째로 읽은 책이다. 작가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길지 않은 시간들을 짧지만 강력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얼빈, 김훈 <문학동네>

 

책을 읽는 내내 그간 안중근 의사를 역사 시간에 배운 지식으로만 때우려 했던 나의 모습을 부끄럽게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나라를 위한 한 사람의 고민과 절규가 시대 속에 말하고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일파(一波)가 흔들리니 만파(萬波)가 일어선다. 산촌에서 고함치면 어촌에서 화답한다.'라는 울림은 1909년 안중근의 이토 저격 후 10년 뒤인 1919년 3·1 운동으로 퍼져나갔다.

영국인 배설이 경영하는 신문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의 제국주의 앞에 대항하는 우리 백성을 의병이라고 불렀다. 일제의 통감부가 신문사를 겁박했으나 배설은 굽히지 않았다. 반면 프랑스 신부 빌렘은 본인이 직접 영세를 베풀었던 도마 안중근을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겼다며 그를 죄인으로 몰아갔다.

 

 

안중근은 자신에게 영세를 베푼 사제를 향해서 '국가 앞에서는 종교도 없다'는 황잡한 말을 하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이토를 죽였는데, 황사영(조선 후기의 천주교인)은 서양 군함을 몰고 와서 국가를 징벌해 달라고 북경의 주교에게 빌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양극단에서 마주 서서, 각자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안중근과 황사영의 죽음은 각자 무엇을 위한 죽음인가?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일본의 1, 5, 7, 10대 총리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를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신문에 실렸던 아주 작은 사진에 의지해 이토를 저격했다. 이토는 곧 죽었다. 이토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었다. 하얼빈에서 김훈 작가는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는 그 순간을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헛된 일을 좋아해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나는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 경찰의 조사를 받는 동안에도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를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나라를 빼앗은 원수를 그의 손으로 반드시 처단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이를 가능케 했다. 

일본 검사의 회유 앞에 안중근 의사는 "사람을 죽인 것이 죄악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빼앗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것 역시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의연하게 대처한다.

 

사형을 앞두고(순교자의 왕관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안중근은 동생 안공근에게 "오늘 네가 잘 왔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하얼빈에 묻어라. 하얼빈은 내가 이토를 죽인 자리이므로 거기는 우선 내가 묻힐 자리다. 한국이 독립된 후에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라. 그전까지 나는 하얼빈에 묻혀 있겠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내 뜻에 따라다오."

일제의 만행 앞에 안타깝게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까지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출처 : 안중근 의사 자서전 - 안응칠 역사(안중근의사기념관) p.114-115]

서른한 살의 안중근 의사가 처자식을 외면하면서까지 지켜내고 싶었던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 지금 나는 안중근 의사가 꿈꾸었던 나라를 만들어가는데 보탬이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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