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나의 힘이요

한국교회에 이런 영성 꼭! 필요하다 - 존 스토트 목사

하늘아래태양 2011. 8. 16. 11:25

 ‘엉클 존’ 스토트 목사. 그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기독교인의 한 사람이었다. 철저한 복음 중심의 목회를 하고, 그것을 삶으로 살아냈다. 그는 우러러보고 기려야 할 기독교의 위대한 업적이면서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할 모델이기도 하다. 목회, 선교, 신학, 교회 연합 등 그의 역할을 한국 교회의 상황에 대입해봤다.

양떼·성경 중심의 목회자
목회자로서 스토트의 관심은 철저히 ‘양떼’에 맞춰져 있었다. ‘우리 안’의 양떼에만 관심을 가졌던 게 아니다. 교구 내 가난하고 잃어버린 양떼에 대해 어느 목회자보다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1950년대 당시 성공회 교회에서는 드물었던 제자훈련, 방문 전도를 실시했던 것도 ‘우리 밖’의 양떼에 대한 관심때문이었다.

스토트 목사는 또한 철저히 성경 중심의 설교를 했다. 성경은 참고서이고, 목회자의 이야기가 주제가 되는 게 아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초점을 맞춘 설교였다. 95년부터 2002년까지 런던 바이블 칼리지(현 런던신학교)에서 스토트 목사와 옥한흠 목사의 설교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던 김대조(서울 잠실동 주님사랑의교회) 목사는 “스토트 목사는 자기 이야기보다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깊이 고민했던 분”이라며 “한국에서는 옥한흠 목사가 스토트 목사의 영향을 받아 철저하게 성경 본문 중심의 설교를 하려 했던 대표적인 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스토트 목사는 수많은 외부 활동을 하셨지만 항상 목양의 마음을 지니신 분이었다”며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오늘날 한국 목회자가 진정 닮아야 할 목회자의 모델”이라고 덧붙였다.

이제는 ‘총체적 복음’(Whole Gospel)을
‘전 세계 가난한 나라들을 방문하고 싶다.’ 영국 런던의 올소울즈교회를 담임했던 스토트 목사의 특별한 열망이었다. 10년 넘게(1983~97) 국제구호기관인 티어펀트(Tearfund) 총재로 활동하고, 제3세계 가난한 학생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돕기 위해 복음주의문학재단(71년)과 국제랭함파트너십(74년)을 만든 이유다. 82년엔 런던 현대기독교연구소를 설립했다. 복음이 교회뿐 아니라 삶과 사회 모든 영역에서 해답이 되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선교한국 파트너스 한철호 상임위원장은 ‘한마디로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꾼 분’이라고 스토트 목사를 설명했다. 그는 “스토트 목사는 74년 로잔대회와 89년 마닐라대회를 통해 개인 복음전도와 사회운동을 결합한 총체적 선교를 선포했다”며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이 같은 총체적 선교관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선교계에 지금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한 위원장은 “한국의 선교 방향도 개인전도를 넘어 사람의 모든 필요를 채우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삶이 뒷받침되는 총체적 복음(Whole Gospel)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복음주의를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 성경 중심의 설교는 스토트 목사를 자연스럽게 ‘복음주의자’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그는 누구보다 복음주의 확장에 앞장섰다. 성공회복음주의협의회(CEED) 의장(1967~84), 영국복음주의연맹(BEA) 회장(73~74), 영국IVF의 전신인 대학기독인교류회(UCCF) 총재(61~82년)를 역임했다.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분명한 차이점도 제시했다. 반지성주의에 치우치는 근본주의에 반해 복음주의는 지성을 중시한다고 했다. 근본주의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복음주의는 성경이 쓰인 문화적 맥락을 살핀다고 설명했다. 복음주의에 대한 이 같은 규정은 수많은 기독 지성인들을 복음주의권 안에 머물게 했다. 그에게 ‘복음주의의 건축자’란 별명이 따라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승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진신학) 교수는 “스토트 목사는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해 신학을 해석하고 사회문제의 답변을 찾았다”며 “그의 성경해석은 혼란했던 성령론을 자리잡게 했고, 수많은 평신도들을 사회 각 분야의 소금이 되게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오늘날 한국의 복음주의권은 스토트 목사의 가르침대로 개인전도에 더욱 주력하고 사회적인 문제의 해답을 찾는 데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과 일치의 조건
1966년 복음주의의 대표주자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는 ‘복음주의자들은 영국성공회와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 해석에 있어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시 영국복음주의협의회 의장이었던 스토트 목사는 이것을 반대하고 자신을 ‘성공회 복음주의자’라고 규정했다. 교회의 분열을 ‘반성경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국성공회의 분열을 막고, 지금처럼 영국성공회를 ‘고교회-저교회’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지닌 교단으로 만들었다. 그는 또 영국성공회가 소속된 세계교회협의회(WCC)에도 꾸준히 참여해 동방정교, 가톨릭과 논쟁을 벌였다.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은 “스토트 목사는 ‘양극을 붙잡아야 역동성이 나온다’는 역동적 통일성(Dynamic Unity)을 강조했다”며 “WCC에 참여해 논쟁하고 세계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시도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또 “오늘날 한국 교회가 연합하려면 스토트 목사가 강조한 ‘약함의 힘’(Power of Weakness)이 필요하다”며 “개인이나 한 교파가 힘을 갖고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약점을 인정하고 남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목회자와 교회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국민일보(신학&영성) 2011.8.16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