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나의 힘이요

'히말라야의 슈바이처' 강원희 선교사

하늘아래태양 2011. 7. 1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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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ㆍ방글라데시ㆍ스리랑카ㆍ에티오피아 등서 30년 의료봉사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대충 시간이나 때우려고 성의없이 진찰하면 오지의 환자들이라도 금세 알아챈다. 빈부나 귀천을 가리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해 진료해야 한다. 가난하고 어려운 환자일수록 더 크게 감동받기 때문에 나는 더 정성을 기울였다."


 

종교 다큐멘터리 영화 '소명 3'에 나오는 강원희(77) 의료선교사의 얘기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내와 함께 험한 히말라야 오지를 돌아다니며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강원희 의료선교사의 이야기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가 극장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7일 20개 안팎의 스크린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17일 만에 관객 2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지금까지 2만 7천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1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소명 3'의 좌석 점유율은 21.50%로, 현재 상영 중인 27편의 영화 가운데 6위를 차지했다. 1위인 영화 '써니'의 좌석 점유율은 29%대.


관객들의 반응이 이처럼 뜨겁자 속초, 부산 등 지방의 영화관 등에서는 조만간 영화를 재개봉할 예정이다.


배급사 에스피엠의 박완수 배급팀장은 "입소문이 나면서 반응이 뜨겁다"면서 "어느 극장에서 상영 중인지 묻는 문의가 많고, 영화가 개봉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극장을 대관해 영화를 볼 정도"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요즘 대형교회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데 돈과 명예를 다 버리고 오지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낮은 곳에 임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감동을 받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강원희 선교사의 삶은 '영화 그 이상의' 감동을 준다.


함경북도 성진이 고향인 강 선교사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 내려와 전쟁의 비참함을 체험했다.


세브란스(현 연세대) 의대에 입학한 그는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고 그의 삶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의대에 다닐 때부터 무의촌 의료 봉사 활동에 힘썼던 그는 1982년 잘되던 병원을 정리하고 선교사가 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49세.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을 찾아 떠났다. 네팔이었다.


강 선교사가 네팔로 가게 된 데에는 '한국 개신교계의 거목' 고(故) 한경직 목사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1976년 외항선교회 속초지부 설립을 위해 속초를 방문한 한경직 목사는 당시 속초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강 선교사에게 "꼭 선교를 가고 싶으면 네팔로 가시오"라고 권유했고, 강 선교사는 "네 알겠습니다. 네팔로 가겠습니다"라고 주저없이 답했다.


그렇게 네팔과 인연을 맺어 10년을 보낸뒤 방글라데시(4년), 스리랑카(4년), 에티오피아(7년) 등에서 약 30년간 의료선교사로 봉사했다.


자신의 피를 수혈해 중환자를 살려내고 환자가 퇴원하면 식료품을 사 들고 집에까지 찾아가는 그를 현지인들은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때로는 너무 힘이 들어 "하나님, 데려가십시오"라고 기도를 하기도 했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 머리카락은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닮아갔고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지난 30년간 오지에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한결같이 돌볼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힘'이었다.


강 선교사는 최근 펴낸 신앙 에세이 '히말라야 슈바이처'에서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그렇게 섬기며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장소가 한국일 수도 있고, 네팔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자리가 어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 부르심을 따를 뿐이다. 살아도 천국이고 부르시면 정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가"라고 고백한다.


신앙과 함께 그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바로 아내였다.


그의 곁에는 늘 아내 최화순 권사가 있었다. 연세대 간호대학을 졸업한 아내는 고아원 봉사에 열심인 '예쁜 간호사'였다.


"우리 부부는 더불어 살아온 세월 가운데 절반이 넘는 30년을 선교 현장에서 보냈다. 아내는 간호사로서 일하는 것 외에도 현지인들에 대한 카운슬러 역할까지 참으로 많은 일들을 감당했다. 나 혼자였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강 선교사는 이제 그만 쉴 때도 되었다는 주변의 권고를 물리치고 지난해 가을 네팔로 세 번째 의료 선교를 떠났다. 물론 이번에도 아내와 함께다.


"하나님께서 내게 날개 치는 독수리 같은 힘을 다시 주셨고, 지금 마음 같아서는 앞으로 10년은 족히 더 사역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하나님이 부르실 그날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삶을 살기를 소원한다."


그가 말하는 간절한 희망이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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