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루키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일본이 낳은 전설적인 야구 선수, 스즈키 이치로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감동적인 연설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을 “세 번의 루키”라고 소개하며, 겸손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치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은 199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지명되었을 때였습니다. 두 번째는 2001년, 27세에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하면서 메이저리그에서의 첫 시즌을 보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명예의 전당 루키로서 다시 시작합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저는 이제 51세입니다. 그러니 제발 조롱은 살살 부탁드립니다”라고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이 유머는 그의 성숙함과 여유, 그리고 여전히 신인처럼 설레는 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기록을 넘어, 진정한 프로정신
성적보다 중요한 자세와 책임
이치로는 자신의 화려한 성적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자세로 야구를 대했는가’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3,000안타, 10개의 골드 글러브, 10시즌 연속 200안타. 나쁘지 않죠? 하지만 사실, 야구가 없다면 저는 정말 멍청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단순히 성적을 위해 경기에 나선 것이 아니라,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팬과 팀을 향한 책임감이라고 믿었습니다.
“팬들은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들여 경기장을 찾습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한 경기일 수 있지만, 선수에게는 모든 순간이 진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즌 마지막 아웃 전까지 장비를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이치로는 장비 관리도 직접 했다고 밝히며, 작은 실수 하나도 프로 선수로서 용납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장갑 끈이 풀려 실책을 하거나, 스파이크를 닦지 않아 베이스에서 미끄러지는 일은 없어야 했습니다.”

목표는 꿈보다 어렵습니다
이치로는 ‘꿈’과 ‘목표’의 차이를 이야기했습니다.

“꿈은 즐겁습니다. 하지만 목표는 어렵고 도전적입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저는 매년 스프링캠프 전에 이미 팔을 만들어 놓고 갔습니다. 준비 없이 훈련소에 도착하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목표를 이룬 첫 단계는 오릭스에 입단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일본 리그에서 타격왕에 오르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마음속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뛰던 시절, 항상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제가 찾던 것은 아마도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입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영감, 도전 그리고 가족의 힘
노모 히데오의 용기에서 얻은 영감
이치로는 미국 진출을 결심하게 된 계기로, 히데오 노모의 존재를 언급했습니다.

“노모 히데오가 일본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 그의 성공은 일본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노모 덕분에 미국 메이저리그는 일본에서도 자주 방송되었고, MLB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그는 “노모의 용기 덕분에 저도 상상하지 못했던 도전을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치로는 오릭스가 그에게 미국 진출을 허락해준 데 대해 감사를 전했고, 시애틀 매리너스가 일본인 타자를 신뢰하고 영입해준 점에도 깊은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첫 미국 시즌의 충격과 각오
이치로는 미국에서 처음 뛰던 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 경기장에 나섰을 때, 나는 내가 존경하던 위대한 선수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에 압도당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더욱 철저한 준비로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많은 이들은 “당신은 너무 말랐고, 체격이 작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어떤 의심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내 유미코의 절대적인 지원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아내 유미코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 때, 가장 많이 지지해 준 사람은 제 아내 유미코였습니다. 19시즌 동안 그녀는 저를 끊임없이 격려했고, 집에서는 언제나 행복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은퇴 후 처음으로 유미코와 함께 관중석에서 경기를 본 날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식으로 핫도그를 먹으면서 경기를 즐겼습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야구가 제게 준 모든 경험 중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되었습니다.”

명예의 전당 그리고 마지막 인사
이치로는 연설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것은 제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는 2001년에 코퍼스타운을 방문하기 전까지 이곳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인 꿈처럼 느껴집니다.”
그는 시애틀 매리너스, 뉴욕 양키스, 마이애미 말린스에 감사를 전하며, 특히 마이애미 시절 젊은 선수들과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3,000번째 안타를 쳤을 때 덕아웃에서 선수들이 달려 나와 축하해준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고인이 된 에이전트 토니 아타나시오에게도 감사를 전했습니다. “그는 저를 미국으로 데려온 사람입니다. 와인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 덕분입니다.”

이치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로란 자신에게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핑계를 대지 않고, 더 나은 나를 위해 오늘도 연습해야 합니다. 그것이 팬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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